Wednesday, February 21, 2007

[LG전자 `글로벌 인력관리 시스템` 도입] 해외법인 관리직도 외국인 채용

LG전자가 전 세계 80개 법인의 인사 제도를 통합,해외 인재들을 본사 인재들과 똑같이 관리하기로 한 것은 국내 기업으로선 실험적인 시도로 받아들여진다. 미국 GE와 같이 글로벌화의 역사가 긴 다국적 기업들은 이미 한국 법인 출신들이 아시아 사업을 총괄하는 등 외국인을 중용하는 문화가 정착됐지만 국내 기업들의 경우 중요 업무는 한국인에게 맡기는 '관습'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LG전자의 첫 시도가 성공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에 재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관련기사
■ [LG전자 '글로벌 인력관리 시스템' 도입] "한국기업 세계인재 풀 활용 너무 늦어"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7022027071&sid=&nid=004

■ LG전자 中서 뽑은 인력, 美법인에도 발령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7022027071&sid=&nid=004



◆진정한 글로벌화는 인재의 글로벌화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신흥시장의 대학생들은 '입사하고 싶은 직장' 중 LG전자 등 한국 기업을 열 손가락 안에 꼽는다. 그러나 정작 입사에 성공한 현지 우수 인재들은 대부분 2∼3년 동안 근무한 후 미국계나 유럽계 기업으로 옮겨간다. 한국 기업에서는 관리자급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LG전자도 비슷한 문제로 고민해왔다. 예를 들어 현지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우수한 현지 마케팅 인력이 절실한데 뽑으면 뽑는 대로 회사를 떠나는 과정을 반복해온 것.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LG전자는 채용에서부터 직급체계,승진,보상 등 모든 인사 프로세스를 하나로 통일해 외국인 인재에 대해서도 차별을 없애는 글로벌 인재 풀(pool)을 구축키로 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선진 기업들의 성공에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우수 인재들을 활용하는 노하우가 있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현지화가 글로벌화 성공의 관건

LG전자의 이번 시도가 성공하기 위해선 현지의 노사문화와 라이프 스타일 등을 적절히 인사제도에 반영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하나의 LG를 만든다는 목표 아래 자칫 한국의 조직문화를 그대로 강요하면 반발을 살 수 있다는 것. 예를 들어 국내 한 자동차회사가 미국에서 영업인력을 채용하면서 흑인을 채용하지 않았다가 고용평등법(EO·Equal Opportunity)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소송을 당했던 게 대표적인 사례. 한 주한 외국기업 관계자는 "선진 기업들은 하나의 인사 시스템을 통해 인재를 관리하지만 국가별 노동 시장의 특성에 맞추도록 각 법인에 충분한 재량권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든 경영자원의 글로벌 통합

LG전자는 남용 부회장이 강조하는 '일하는 방식'을 글로벌화하기 위해 인사뿐 아니라 구매,물류,재고,재무 등 모든 경영 프로세스를 글로벌 기준으로 통합키로 했다. 우선 공급망 관리의 통합을 위해 본사와 각 사업본부에 '글로벌 오퍼레이션 & 코맨드센터(GOC)'를 신설했다. 국가별,제품별 수요 변화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판매 예상치를 결정하고 제품 출시,단종,선적,생산,부품·원자재 조달,출하,선적 등 글로벌 사업의 전 과정을 밀착 관리한다. 또 전 세계의 구매와 물류를 통합 관리하는 전자구매담당팀 및 글로벌 물류팀을 각각 신설했다.

뿐만 아니라 LG전자는 올해 1분기부터 경영실적을 글로벌 기준으로 발표하기로 했다. 스테픈 베어 맥킨지 서울사무소 대표는 "한국 기업들은 시장의 글로벌화는 어느 정도 달성했지만 경영자원(management resource)의 글로벌화는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며 "LG전자의 시도가 전체 한국 기업으로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입력시간: 02/20 17:44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7022026581&sid=0104&nid=004<ype=1

Wednesday, February 14, 2007

단카이세대 노하우 낱낱이 기록해

신일본제철 대량 퇴직 대비
1만여 명에 전자펜 등 지급


일본 최대의 신일본제철은 올해부터 시작되는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이른바 ‘단카이 세대’ 사원의 대량 퇴직에 대비, 숙련공의 조업 노하우를 일일이 기록해 전 사원이 공유하기로 했다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14일 보도했다.

회사 성장의 견인차였던 단카이 세대 사원들이 대거 퇴직할 경우 숙련 기술이 제대로 전수되지 못해 기술적인 공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신문에 따르면, 신일본제철은 모든 사원들에게 대당 수만 엔이 나가는 전용기기를 지급, 숙련공의 노하우에 의존해온 조업 정보를 일일이 기록하도록 했다. 작업 노하우를 전자화해 기능이 후배들에게 전승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회사는 작업 데이터를 자동기록하는 시스템을 독자적으로 개발, 실험에 성공했으며, 올해 안에 국내 9개 제철소에 배치할 계획이다.

이 시스템은 현장에서 숙련공이 구두로 전해온 작업 기술 등을 기록할 수 있도록 사원들의 헬멧에 소형 음성인식장치를 부착, 대화나 지시가 자동 기록되도록 하고, 조업 데이터는 휴대정보단말을 이용, 전자펜으로 입력하도록 하고 있다.

신일본제철은 현장 종업원 1만1000명 가운데 앞으로 10년 사이에 절반 정도가 퇴직을 하기 때문에, 숙련공의 노하우를 IT 시스템을 이용해 전승하는 것이 경쟁력 유지에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2007-02-15
http://www.metroseoul.co.kr/

도약하는 베트남 경제

[르몽드디플로마티크] 공산당 ‘경제발전 아버지’ 자처

2년 전부터 경제성장률 8%대
부정부패·취약한 시스템 한계
정부, 자본·인재확보에 안간힘

베트남은 지난해 11월 WTO에 가입하고 아펙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베트남은 이제 비로소 떠오르는 경제의 주역이 됐다.

과거 사이공으로 불렸던 호치민은 지금 경제발전의 견인차로 베트남 경제를 이끌고 있다. 호치민 시는 도로를 확충하고, 강을 관통하는 터널을 뚫고, 지하철을 건설하느라 부산하다. 수도인 하노이 주변도 위성도시들이 생겨 활기가 넘친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베트남 경제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발전을 이뤄왔다.

연간 경제 성장률은 2004년까지 7%대, 그 이후에는 8%대를 기록했다. 2006년에는 외국인 투자율이 전년도에 비해 50% 증가해서 70억유로(약 8조5648억원)를 뛰어넘었다.

베트남은 우수한 두뇌 및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197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자본주의 체제를 배운 보트 피플의 자녀들까지도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해 이들이 국내에 들여온 투자금은 최소 30억유로에 이른다.

1990년대를 전후해, 베트남은 가장 주목받는 투자처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베트남은 최근에 들어서야 해외 투자자들과 관광객들에게 개방됐다. 공산당 체제가 지나치게 완고한 탓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사그라지곤 했다. 거의 반세기 동안 전쟁을 치렀던 나라에서 평화란 여전히 낯선 단어였다.

1990년대 악조건 속의 출발은 이제 과거의 일이다. 2006년 초, 미국의 인텔그룹은 반도체 공장에 20억유로 이상을 투자해 정보기술 발전의 디딤돌을 놓았다. 2005년 정보통신 분야에서 40%의 성장률을 기록해 1만5천명이 일자리를 얻었다. 베트남의 인터넷 이용자는 지난해 말 현재 1400만명에 이른다. 8400만 인구의 17.5%에 해당한다. 지난해 6월 현재 인구의 18.5%가 휴대전화를 이용한다.

베트남은 부정부패, 하부 경제구조의 취약, 금융시스템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은 스스로 갖춘 ‘좋은 조건’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것은 저임금 경쟁력과 현장 적응력이 뛰어난 인적 자원, 독단적이지만 정책이 결정되면 ‘진력’하는 관료체제다.

베트남은 지난해 11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베트남은 몇 해 전부터 경제열기가 계속됐지만, 이제 비로소 떠오르는 경제의 주역이 됐다.

정부는 더 이상 과거 군사정권의 영광에 안주하는 옛 전사들이 아니다. 사실 공산당은 세 가지 면에서 타격을 받았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소련의 내부 파열, 미국식 시장경제의 도입이다. 공산당은 ‘경제발전의 아버지’라는 인상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 가입으로 외교 솜씨도 인정받았다. 전기 가설에 타이는 평균 23일이 걸리지만 베트남은 17일이 걸린다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칭찬한다.

그러나 정부의 기능이 급속히 현대화하면서, 공산당이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부정부패 척결은 최우선 순위다. 경제면에서도 어려움이 산적해 있다. 1990년 이후 1인당 국민소득이 세 배로 뛰었지만, 그 액수는 2006년 550유로에 지나지 않는다. 2010년까지 850유로의 문턱을 넘는 것이 목표다. 멀리 나갔다 돌아온 나라, 평화와 진실이 20년의 공백을 아직 넘지 못한 것일까?

쟝 클로드 포몬티/<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기사등록 : 2007-02-14 오후 06:08:11
기사수정 : 2007-02-14 오후 06:53:27

http://hani.co.kr/arti/international/asiapacific/190716.html

[이주 합의 대추리] 어머니 품 같은 고향 영영 떠난다니... 눈시울만

울며 겨자 먹기
설 커녕 인적 뚝

모두가 떠나가야 할 너른 들판. 누렇게 말라 비틀어진 갈대와 잡풀이 뒤엉켜 세찬 겨울바람에 흔들렸다. 새벽녘까지 추적추적 내린 겨울비 탓인지 방패를 든 전경들 어깨 너머로 보이는 마을은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설을 나흘 앞뒀지만 마을 어디에서도 명절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맘때면 방방곡곡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고향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펼침막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폭격을 맞은 듯한 건물 잔해, 폐허로 방치된 농가의 깨진 유리창, 인적 없는 골목을 누비며 외지인을 향해 꼬리를 흔들거나 짖어대는 강아지…. 2007년 2월14일 오전 경기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의 풍경이다.

바로 하루 전, 마을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정부와 이주에 합의했다. 하지만, 고향을 떠나야 하는 노인들은 깊은 상실감과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분노도 컸다. 여느 때 같으면 기자들을 만나 푸념도 하고 한숨도 짓던 마을 노인들은 “이제 다 끝났는데 사람 취급도 못 받는 우리에게 뭘 더 얘기하라는 것이냐”며 노인정 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4대째 살아온 고향을 떠나야 하는 방효태(71)씨는 “강아지 이사하는 것도 아니고 나가기로만 합의하면 어떻게 하란 말이여”라며 “17살 때 미군기지 때문에 이곳으로 쫓겨와 50년 넘게 자갈밭 갈아놨는데 이제 어머니 뱃속 같은 이곳을 영원히 떠나야 하다니 어찌할 줄 모르겠다”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농사야 쇠뼈다귀 울궈먹듯 하는 것인데,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나가서 무엇을 해먹고 살란 말이냐. 다리 뻗을 만하면 쫓겨나고 살 만하면 내몰리는 처지가 너무도 비참하다”며 가슴을 쳤다.

기척이 있는 집 문을 두드려 만난 김아무개(80) 할머니는 “이 나라에서 백성 취급을 받으며 살 수 있는 날은 내 평생 없는 것 같다. 떠난다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떨린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주민대책위원회 관계자는 “비록 정부와 합의는 했지만 마을 주민들의 충격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라며 “힘의 논리와 시간적 압박에 못 이겨 이뤄진 이주 합의여서 안타깝고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 대부분이 70살을 전후한 노인들인데, 이주단지로 지정된 곳은 주변이 양계장과 목장, 과수원 등으로 둘러싸여 사람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합의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오는 17일 900회를 맞는 미군기지 확장·이전 반대 촛불집회장인 대추리 농협 창고 앞에서 만난 문정현 신부는 “폭력으로 시작한 미군기지 이전 작업은 마을 주민은 물론 국민 모두에게 좌절과 분노만 남기게 됐다”고 목청을 높였다.

미군기지 반대를 알리는 깃발이 여기저기 나부끼는 대추리에 곧 찾아올 ‘마지막 설날’은 ‘까치 설날’만 있을 것 같았다. 평택/글·사진 김기성 기자 player18@hani.co.kr

http://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90778.html

건달 마저 떠난 청계천, 노점상 한숨만

긴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진행해도 이런 소외를 막을 수 있을까말까 한데... 이명박 전 시장은 이런 사람들을 염두에 두기나 했을까? 정말 강남구청장도 과분한 사람이다... 쩝

건달 마저 떠난 청계천, 노점상 한숨만

Wednesday, February 07, 2007

18세기 조선 최고의 만능 과학자는?

18세기 조선 최고의 만능 과학자는?

» 영조시대 장인 최천약이 직접 만든 놋쇠자(복원품). 황종척, 영종척 등의 서로 다른 자 이름이 각 면마다 보인다.

조선시대 가장 뛰어난 과학 기술자는 누구일까. 열에 아홉은 측우기를 만들었다는 15세기 세종 때의 장인 장영실을 손꼽을 듯하다. 그러나 400여년이 지난 조선 후기에도 장영실에 필적하는 과학기술의 명인이 있었다. 서양 문물인 자명종 시계의 제작과 오늘날도 거의 오차가 없는 탁월한 수준의 도량형자를 만들었던 명인이라면?

그의 이름은 최천약. 18세기 초중반 영조 시대를 풍미했던 경남 동래 출신의 무인이다. 한학 연구자인 안대회 명지대 교수는 다음주 나올 국학계간지 <문헌과 해석>겨울호(37호)에 ‘영조시대 기술자 최천약의 삶과 업적’란 글을 내고 영조시대 최고의 과학기술자로 군림했던 이 장인의 삶을 처음으로 발굴해 소개했다. 안 교수는 글에서 최천약을 ‘각종 기계와 도량형 자를 제작한 만능 기술자이자 악기, 조각품을 만든 예술가’라며 “가장 주목할 만한 18세기의 거장”으로 소개했다. (하략)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883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