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의 딜레마, 기저귀의 딜레마
죄수의 딜레마, 기저귀의 딜레마
가만 있는게 더 이익인 기저귀 회사들은 왜 연구개발에 거액을 투자할까 … 게임이론이 두 업체의 경쟁 설명, 죄수의 딜레마가 소비자를 승리자로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의 용어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시장 진입 방해(Entry Deterrence)
선점 전략(Preemptive Strategy)
인생에서 단 한 번의 시기, 약 2년 동안 집중적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30년 안팎이 흐른 뒤, 다시 2년 동안 집중적으로 사들인다. 이렇게 사들이는 분량이 한국 시장 전체로 따지면 연간 3천억원 규모다. 아기 기저귀 이야기다.
연구개발은 시장 진입장벽도 높여
기저귀를 살 때마다 그 놀라운 진화 속도에 놀란다. 그렇게 얇고 가벼운 종이에 그렇게 많은 수분이 흡수된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수분이 흡수되면 겉에 색깔이 표시되기까지 한다. 요즘은 새지 않게 날개까지 달아준다. 그것도 모자라, 지나치게 많은 수분이 안에 차서 습진이 생기지 않도록, 어느 수준이 되면 저절로 날개가 열려 수분을 바깥으로 빼내준다.
이런 제품 혁신이 이어지려면 분명히 상당한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기업들은 왜 연구개발에 투자를 할까?
기저귀라는 상품에는 마땅한 대체재가 없고, 많은 시장에서 2~3개 업체가 대부분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는 과점 상태에 있다.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일정한 수의 사람들은 어차피 기저귀를 사게 된다. 품질을 개선한다고 팔리는 기저귀의 총량이 눈에 띄게 늘어날 리는 없다.
기저귀 회사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다들 지금이라도 연구개발을 다 함께 멈춘다면 그 비용 절약 몫만큼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지 않을까? 기저귀 회사들이 자신의 이윤보다 소비자의 편리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타주의자들일 리는 없으니 말이다.
정답은 게임이론(Game Theory)에 있었다.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상황을 대입해보면 기저귀가 자꾸만 진화를 거듭하는 이유가 나온다. 최소한 미국에서 벌어진 기저귀의 놀라운 진화는, 기저귀 시장을 분점하고 있는 킴벌리클라크와 P&G 두 기업 사이에 벌어진 게임의 결과다.
미국 기저귀 시장은 P&G의 팸퍼스와 킴벌리클라크의 하기스가 양분하고 있다. 유력한 상표라고는 딱 두 개밖에 없으니, 둘 다 연구개발에 돈을 들이지 않으면 분명 이득이다. 아기들은 어차피 계속 태어나고, 부모들은 기저귀를 계속 사들인다. 시장에는 둘 말고는 유력한 회사도 없다. 어차피 둘 중 하나를 산다. 속된 말로 놀고먹어도 노나는 장사다.
그런데도 두 회사는 끊임없이 거액을 투자해 연구개발을 이어간다. 연구개발 전쟁을 일으키는 동력인 두 회사 사이의 게임은 표 하나로 요약된다.
(표는 사이트 직접 가서 보세요...)
기저귀 산업의 이익, 즉 두 기업의 이익의 합은 둘 다 연구개발에 투자하지 않을 때 최고 수준이다. 두 기업 모두 60씩의 이익을 거둬가고, 산업 전체 이익은 120이다. 두 회사 모두 연구개발에 투자할 경우 산업 전체의 이익은 40으로 가장 적다. 한 회사만 투자했을 때, 산업 전체의 이익은 60으로 중간 수준이다. 그런데 둘 중 한 회사만 투자할 경우, 투자하지 않은 회사가 20만큼의 적자를 얻게 된다.
그러나 둘 중 한 기업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P&G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똑똑한 기업이라면 먼저 유력한 경쟁자의 반응을 예측하고 나서 전략을 결정할 것이다.
킴벌리클라크가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경우, P&G는 연구개발에 투자하면 20, 투자하지 않으면 -20의 수익을 얻는다. 물론 투자하는 게 유리하다. 반대로 킴벌리클라크가 투자하지 않을 경우, P&G는 투자하면 80, 투자하지 않으면 60의 수익을 얻는다. 여기서도 투자하는 게 유리하다.
결론적으로 킴벌리클라크의 반응과 관계없이 무조건 투자하는 게 유리하다. 거꾸로 킴벌리클라크 입장에서 봐도 마찬가지다. 아기 기저귀 종이 질이 왜 좋아지고 날개는 왜 생겨났는지가 이제야 설명된다. 연구개발과 제품 혁신은 게임의 법칙을 이해하고 있던 두 기업에게는 필연적이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연구개발 투자에는 기존 과점기업들을 신규 진입 기업들로부터 지켜주는 효과도 있다. 킴벌리클라크의 하기스와 P&G의 팸퍼스 기저귀가 엄청나게 진화하는 동안, 새로운 기업이 기저귀 시장에 진입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앞선 두 기업이 연구개발비를 지속적으로 투입하면서 쌓아둔 기술력을 따라잡기가 더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담합을 통해 딜레마에서 벗어난다면?
이게 바로 시장진입 방해효과(Entry Deterrence)이다. 기저귀는 점점 둘만의 시장이 되어버린다. P&G와 킴벌리클라크 사이의 게임이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었다면, 이 두 회사와 잠재적 기저귀 생산업체들 사이에도 시장 선점 전략(preemptive strategy)이라는 또 다른 종류의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 사정이야 어쨌든, 연구개발 투자로 기저귀 품질이 자꾸 좋아지면 아기와 부모들 기분도 좋아진다. 일단 이 게임의 승자는 소비자다. 기업들이 보이지 않는 담합을 통해 죄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법을 터득한다면 상황은 180도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http://h21.hani.co.kr/section-021134000/2006/07/021134000200607060617066.html
가만 있는게 더 이익인 기저귀 회사들은 왜 연구개발에 거액을 투자할까 … 게임이론이 두 업체의 경쟁 설명, 죄수의 딜레마가 소비자를 승리자로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의 용어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시장 진입 방해(Entry Deterrence)
선점 전략(Preemptive Strategy)
인생에서 단 한 번의 시기, 약 2년 동안 집중적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30년 안팎이 흐른 뒤, 다시 2년 동안 집중적으로 사들인다. 이렇게 사들이는 분량이 한국 시장 전체로 따지면 연간 3천억원 규모다. 아기 기저귀 이야기다.
연구개발은 시장 진입장벽도 높여
기저귀를 살 때마다 그 놀라운 진화 속도에 놀란다. 그렇게 얇고 가벼운 종이에 그렇게 많은 수분이 흡수된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수분이 흡수되면 겉에 색깔이 표시되기까지 한다. 요즘은 새지 않게 날개까지 달아준다. 그것도 모자라, 지나치게 많은 수분이 안에 차서 습진이 생기지 않도록, 어느 수준이 되면 저절로 날개가 열려 수분을 바깥으로 빼내준다.
이런 제품 혁신이 이어지려면 분명히 상당한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기업들은 왜 연구개발에 투자를 할까?
기저귀라는 상품에는 마땅한 대체재가 없고, 많은 시장에서 2~3개 업체가 대부분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는 과점 상태에 있다.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일정한 수의 사람들은 어차피 기저귀를 사게 된다. 품질을 개선한다고 팔리는 기저귀의 총량이 눈에 띄게 늘어날 리는 없다.
기저귀 회사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다들 지금이라도 연구개발을 다 함께 멈춘다면 그 비용 절약 몫만큼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지 않을까? 기저귀 회사들이 자신의 이윤보다 소비자의 편리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타주의자들일 리는 없으니 말이다.
정답은 게임이론(Game Theory)에 있었다.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상황을 대입해보면 기저귀가 자꾸만 진화를 거듭하는 이유가 나온다. 최소한 미국에서 벌어진 기저귀의 놀라운 진화는, 기저귀 시장을 분점하고 있는 킴벌리클라크와 P&G 두 기업 사이에 벌어진 게임의 결과다.
미국 기저귀 시장은 P&G의 팸퍼스와 킴벌리클라크의 하기스가 양분하고 있다. 유력한 상표라고는 딱 두 개밖에 없으니, 둘 다 연구개발에 돈을 들이지 않으면 분명 이득이다. 아기들은 어차피 계속 태어나고, 부모들은 기저귀를 계속 사들인다. 시장에는 둘 말고는 유력한 회사도 없다. 어차피 둘 중 하나를 산다. 속된 말로 놀고먹어도 노나는 장사다.
그런데도 두 회사는 끊임없이 거액을 투자해 연구개발을 이어간다. 연구개발 전쟁을 일으키는 동력인 두 회사 사이의 게임은 표 하나로 요약된다.
(표는 사이트 직접 가서 보세요...)
기저귀 산업의 이익, 즉 두 기업의 이익의 합은 둘 다 연구개발에 투자하지 않을 때 최고 수준이다. 두 기업 모두 60씩의 이익을 거둬가고, 산업 전체 이익은 120이다. 두 회사 모두 연구개발에 투자할 경우 산업 전체의 이익은 40으로 가장 적다. 한 회사만 투자했을 때, 산업 전체의 이익은 60으로 중간 수준이다. 그런데 둘 중 한 회사만 투자할 경우, 투자하지 않은 회사가 20만큼의 적자를 얻게 된다.
그러나 둘 중 한 기업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P&G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똑똑한 기업이라면 먼저 유력한 경쟁자의 반응을 예측하고 나서 전략을 결정할 것이다.
킴벌리클라크가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경우, P&G는 연구개발에 투자하면 20, 투자하지 않으면 -20의 수익을 얻는다. 물론 투자하는 게 유리하다. 반대로 킴벌리클라크가 투자하지 않을 경우, P&G는 투자하면 80, 투자하지 않으면 60의 수익을 얻는다. 여기서도 투자하는 게 유리하다.
결론적으로 킴벌리클라크의 반응과 관계없이 무조건 투자하는 게 유리하다. 거꾸로 킴벌리클라크 입장에서 봐도 마찬가지다. 아기 기저귀 종이 질이 왜 좋아지고 날개는 왜 생겨났는지가 이제야 설명된다. 연구개발과 제품 혁신은 게임의 법칙을 이해하고 있던 두 기업에게는 필연적이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연구개발 투자에는 기존 과점기업들을 신규 진입 기업들로부터 지켜주는 효과도 있다. 킴벌리클라크의 하기스와 P&G의 팸퍼스 기저귀가 엄청나게 진화하는 동안, 새로운 기업이 기저귀 시장에 진입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앞선 두 기업이 연구개발비를 지속적으로 투입하면서 쌓아둔 기술력을 따라잡기가 더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담합을 통해 딜레마에서 벗어난다면?
이게 바로 시장진입 방해효과(Entry Deterrence)이다. 기저귀는 점점 둘만의 시장이 되어버린다. P&G와 킴벌리클라크 사이의 게임이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었다면, 이 두 회사와 잠재적 기저귀 생산업체들 사이에도 시장 선점 전략(preemptive strategy)이라는 또 다른 종류의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 사정이야 어쨌든, 연구개발 투자로 기저귀 품질이 자꾸 좋아지면 아기와 부모들 기분도 좋아진다. 일단 이 게임의 승자는 소비자다. 기업들이 보이지 않는 담합을 통해 죄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법을 터득한다면 상황은 180도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http://h21.hani.co.kr/section-021134000/2006/07/0211340002006070606170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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