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잘못된 선택을 할까?
오랫동안 경제학에선 사람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이론을 전개해왔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여기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올해 1월 '인지과학동향(Trends in Cognitive Science)'지에 지금까지 심리학적으로 연구된 '잘못된 선택'의 패턴에 대해서 정리한 논문이 게재되어 그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람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예측을 정확히 하고도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데 실패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편향 때문이다.
충격 편향(Impact bias): 어떤 일은 생각보다 기쁘지 않거나, 괴롭지 않다. 특히 사람의 마음은 괴로운 일을 당하면 이것을 회피해서 정신건강을 보호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괴로운 일들은 정작 일어나보면 그렇게 괴롭지 않다. 예를 들어 아이러브XXX의 경우 처음에는 "정말 조작이라면 어떻게 하지"라고 불안해하다가도, 정말로 조작이 발견되면 "원천기술이 있으니 괜찮아"라고 생각해버린다. 그러니 처음부터 불안해할 필요도 없었다.
투사 편향(Projection bias): 지금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기준으로 선택을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편향이다. 예를 들면 남자들이 "나라면 난자 기증 얼마든지 하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그렇다. 그런데 정작 이 남자들 헌혈도 잘 안한다는 걸 생각해보자. 무슨 일이든 소파에 앉아서 생각하는 것과 막상 닥쳤을 때는 전혀 다른 법이다.
구별 편향(Distinction bias): 물건을 살 때는 여러 가지 물건 중에 하나를 고른다. 여기서는 상대적 기준이 중요하다. 그러나 정작 사고나면 쓰는 데 얼마나 좋은지 절대적 기준으로 평가하게 된다. 이렇게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편향이다. 카메라를 살 때 온갖 사양과 기능을 다 비교해서 사놓고는 정작 허구헌날 얼짱각도 셀카만 찍는 경우라 하겠다.
기억 편향(Memory bias):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법인데, 우리는 최근의 일, 최악의 일을 그렇지 않은 일들보다 더 잘 기억한다. 손가락이 부러져라 레벨 노가다를 해서 재미없게 게임을 하고도, 마지막에 엔딩을 본 기억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에 그 게임은 재밌었다고 생각한다든지 하는 경우랄까.
믿음 편향(Belief bias): 우리는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 나름대로 '이론'을 가지고 있다. 이걸 '소박한 이론(lay theory)'이라고 하는 데, 대충 맞는 경우도 있지만 잘못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대부분 사람들은 "선택지는 많을 수록 좋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직원들에게 하와이로 휴가를 보내주면 매우 좋아한다. 그러나 파리와 하와이 중에 골라서 휴가를 가라고 하면, 파리에 간 사람은 바다가 없다고 불평이고, 하와이에 간 사람은 박물관이 없다고 불평이다.
이런 편향을 피해서 미래를 제대로 예측하고도,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있다.
충동(Impulsivity): 미래를 빤히 알더라도 지금 당장의 충동에 이끌려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 한 마디로 "지름신이 강림하는" 경우라 하겠다. 이것이야 워낙 자주 경험하기 때문에 더 길게 얘기하지 않겠다.
잘 못된 원칙(Rule-based decisions): 우리는 충동의 위험성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피하려고 나름대로 원칙을 세운다. 그런데 스티븐 코비의 충고처럼 원칙대로 산다고 항상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절약은 대체로 좋은 원칙이지만, 새만금 개발처럼 지금까지 들어간 돈이 아까워서 빼도 박도 못하는 경우라면 그런 원칙은 갯벌에 묻어두는 게 좋다.
소박한 합리주의(Lay rationalism): 충동을 피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려고 하지만 어딘가 핀트가 어긋난 경우다. 소박한 합리주의는 '객관적'인 요소에 집착함으로써 자신의 욕구를 무시한다. 사람들에게 500원짜리 작고 예쁜 하트 모양 초콜렛과 2000원짜리 큼지막한 바퀴벌레 모양 초콜렛 중에 하나를 먹으라고 하면, 바퀴벌레 초콜렛을 먹는다. 기분이 어땠을 지는 상상에 맡긴다.
매개 최대화(Medium maximization): 사람들에게 힘든 일을 하고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먹을래 아니면 쉬운 일을 하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을래?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쉬운 일을 하고 바닐라를 먹는다. 그런데 힘든 일을 하면 쿠폰을 100장 주고, 쉬운 일을 하면 쿠폰을 60장을 준다. 그리고 이 쿠폰으로는 아이스크림과 바꿔먹을 수 있는 데 피스타치오는 100장, 바닐라는 60장이다. 사실 처음 실험과 모든 것이 똑같고 단지 그 사이에 쿠폰이라는 단계를 하나 추가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행동은 완전히 바뀌어서 힘든 일을 해서 쿠폰을 많이 번 다음에 피스타치오를 먹는다. 여기서 쿠폰과 같이 목적과 결정을 이어주는 단계를 매개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매개를 최대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10억 모으기'가 전형적인 예다. 그거 모아서 뭐할 건데?
인간의 행동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뤄진 진화적 적응의 결과물이다. 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편향'들 또한 마찬가지다. 이와 같은 행동들은 수 백 만년에 걸쳐 진행된 구석기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적응의 결과이고, 따라서 그 시대 기준으로는 합리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불과 몇 천년만에 인간들은 스스로 적응 할 수 없는 사회를 만들고 만 것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mentalese
세상만사 심리독해
http://wnetwork.hani.co.kr/mentalese/
기사등록 : 2006-01-24 오후 01:48:16
기사수정 : 2006-01-24 오후 03:22:09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7512.html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여기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올해 1월 '인지과학동향(Trends in Cognitive Science)'지에 지금까지 심리학적으로 연구된 '잘못된 선택'의 패턴에 대해서 정리한 논문이 게재되어 그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람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예측을 정확히 하고도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데 실패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편향 때문이다.
충격 편향(Impact bias): 어떤 일은 생각보다 기쁘지 않거나, 괴롭지 않다. 특히 사람의 마음은 괴로운 일을 당하면 이것을 회피해서 정신건강을 보호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괴로운 일들은 정작 일어나보면 그렇게 괴롭지 않다. 예를 들어 아이러브XXX의 경우 처음에는 "정말 조작이라면 어떻게 하지"라고 불안해하다가도, 정말로 조작이 발견되면 "원천기술이 있으니 괜찮아"라고 생각해버린다. 그러니 처음부터 불안해할 필요도 없었다.
투사 편향(Projection bias): 지금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기준으로 선택을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편향이다. 예를 들면 남자들이 "나라면 난자 기증 얼마든지 하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그렇다. 그런데 정작 이 남자들 헌혈도 잘 안한다는 걸 생각해보자. 무슨 일이든 소파에 앉아서 생각하는 것과 막상 닥쳤을 때는 전혀 다른 법이다.
구별 편향(Distinction bias): 물건을 살 때는 여러 가지 물건 중에 하나를 고른다. 여기서는 상대적 기준이 중요하다. 그러나 정작 사고나면 쓰는 데 얼마나 좋은지 절대적 기준으로 평가하게 된다. 이렇게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편향이다. 카메라를 살 때 온갖 사양과 기능을 다 비교해서 사놓고는 정작 허구헌날 얼짱각도 셀카만 찍는 경우라 하겠다.
기억 편향(Memory bias):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법인데, 우리는 최근의 일, 최악의 일을 그렇지 않은 일들보다 더 잘 기억한다. 손가락이 부러져라 레벨 노가다를 해서 재미없게 게임을 하고도, 마지막에 엔딩을 본 기억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에 그 게임은 재밌었다고 생각한다든지 하는 경우랄까.
믿음 편향(Belief bias): 우리는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 나름대로 '이론'을 가지고 있다. 이걸 '소박한 이론(lay theory)'이라고 하는 데, 대충 맞는 경우도 있지만 잘못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대부분 사람들은 "선택지는 많을 수록 좋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직원들에게 하와이로 휴가를 보내주면 매우 좋아한다. 그러나 파리와 하와이 중에 골라서 휴가를 가라고 하면, 파리에 간 사람은 바다가 없다고 불평이고, 하와이에 간 사람은 박물관이 없다고 불평이다.
이런 편향을 피해서 미래를 제대로 예측하고도,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있다.
충동(Impulsivity): 미래를 빤히 알더라도 지금 당장의 충동에 이끌려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 한 마디로 "지름신이 강림하는" 경우라 하겠다. 이것이야 워낙 자주 경험하기 때문에 더 길게 얘기하지 않겠다.
잘 못된 원칙(Rule-based decisions): 우리는 충동의 위험성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피하려고 나름대로 원칙을 세운다. 그런데 스티븐 코비의 충고처럼 원칙대로 산다고 항상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절약은 대체로 좋은 원칙이지만, 새만금 개발처럼 지금까지 들어간 돈이 아까워서 빼도 박도 못하는 경우라면 그런 원칙은 갯벌에 묻어두는 게 좋다.
소박한 합리주의(Lay rationalism): 충동을 피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려고 하지만 어딘가 핀트가 어긋난 경우다. 소박한 합리주의는 '객관적'인 요소에 집착함으로써 자신의 욕구를 무시한다. 사람들에게 500원짜리 작고 예쁜 하트 모양 초콜렛과 2000원짜리 큼지막한 바퀴벌레 모양 초콜렛 중에 하나를 먹으라고 하면, 바퀴벌레 초콜렛을 먹는다. 기분이 어땠을 지는 상상에 맡긴다.
매개 최대화(Medium maximization): 사람들에게 힘든 일을 하고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먹을래 아니면 쉬운 일을 하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을래?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쉬운 일을 하고 바닐라를 먹는다. 그런데 힘든 일을 하면 쿠폰을 100장 주고, 쉬운 일을 하면 쿠폰을 60장을 준다. 그리고 이 쿠폰으로는 아이스크림과 바꿔먹을 수 있는 데 피스타치오는 100장, 바닐라는 60장이다. 사실 처음 실험과 모든 것이 똑같고 단지 그 사이에 쿠폰이라는 단계를 하나 추가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행동은 완전히 바뀌어서 힘든 일을 해서 쿠폰을 많이 번 다음에 피스타치오를 먹는다. 여기서 쿠폰과 같이 목적과 결정을 이어주는 단계를 매개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매개를 최대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10억 모으기'가 전형적인 예다. 그거 모아서 뭐할 건데?
인간의 행동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뤄진 진화적 적응의 결과물이다. 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편향'들 또한 마찬가지다. 이와 같은 행동들은 수 백 만년에 걸쳐 진행된 구석기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적응의 결과이고, 따라서 그 시대 기준으로는 합리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불과 몇 천년만에 인간들은 스스로 적응 할 수 없는 사회를 만들고 만 것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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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심리독해
http://wnetwork.hani.co.kr/mentalese/
기사등록 : 2006-01-24 오후 01:48:16
기사수정 : 2006-01-24 오후 03:22:09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75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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