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자 변화 촉발 변호사 다케시타 요시키
“말단조직원 범죄도 도목책임”
역사적 판결 이끌어 눈물
안마일 하며 점자로 공부
아시아사람들 - ‘두목’ 꺼꾸러뜨린 시각장애인
야 마구치구미 내부의 역학구도 변화를 촉발시킨 사람은 일본 최초의 시각장애 변호사인 다케시타 요시키(54)다. 그가 5대 두목 와타나베의 거물급 변호인단을 꺾고 거액의 배상을 받아냈다. 3차 조직의 말단 조직원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연대책임을 야쿠자 우두머리에게 물은 획기적 판결을 이끌어낸 것이다.
최대 폭력조직의 두목을 상대로 한 소송이라 누구도 맡으려 하지 않았다. 평소 두목의 책임을 강조해온 탓에 그가 앞장서게 됐다. 1심에선 패했으나 항소심에선 재판부 설득에 성공했다. 항소심 판결이 나오자 그는 역사적 첫발을 내딛었다는 기쁨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눈이 나빴던 다케시타는 중3 때 스모 연습 도중 망막박리로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장애인학교를 다니면서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 탐정소설·드라마가 재미있었다는 단순한 이유다. 그렇지만 기초과목 성적조차 바닥권이던 그에게는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교사들은 법대에 진학하겠다는 그를 타박하면서도 보충수업까지 해주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71년 다행히 교토의 류코쿠대에 입학했다. 학교 쪽은 특별한 배려를 해줄 수 없다는 조건을 붙여 그를 받아들였다. 교내 점자번역 동아리 등의 도움을 얻어 점자 교재와 강의 녹음 테이프를 만들어 공부를 해나가는 것은 물론, 시각장애인의 학습환경 개선을 위한 조직도 꾸렸다.
1학 년을 마칠 무렵 사법고시 도전을 계획하고는 법무성에 점자로 수험이 가능한지를 문의했으나, ‘실시 불가능’이라는 매정한 답이 돌아왔다. 1년여 싸움 끝에 점자 수험을 허용받았고, 점자 육법전서 제공 등도 쟁취했다. 9차례의 도전 끝에 81년 합격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동안 생활비를 벌기 위해 평일 저녁 3시간씩 병원에서 마사지를 하고, 토·일요일에는 하루 종일 안마일에 매달려야 했다.
밝은 성격을 타고 났기에 이런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는 힘든 안마에 대해 “불편한 곳을 부드럽게 해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뻐한다. 변호사의 일도 그런 의미에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해마다 마라톤 풀코스 한번, 하프코스 10번 정도를 완주해왔다. 지난 4월에는 40일 동안 휴가를 내 히말라야의 쵸오유봉(8201m) 등정에 나섰다. 정상을 불과 250m 앞두고 발길을 돌려야 했지만.
그가 가장 즐겨 쓰는 말은 도전이다. “도전은 힘을 준다. 하나의 도전을 끝내면 불안과 쓸쓸함이 찾아오므로 자연히 다음 도전을 찾아나서게 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그는 그동안 생활보호대상자 등 사회적 약자 변호에 주력해왔다. 지난 10월에는 그의 삶을 다룬 <전맹>라는 책도 출간됐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http://www.hani.co.kr/kisa/section-004006000/2005/12/0040060002005122518132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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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자 최대조직 권력투쟁·영토확장 ‘회오리’
http://www.hani.co.kr/kisa/section-004006000/2005/12/004006000200512251815218.html
역사적 판결 이끌어 눈물
안마일 하며 점자로 공부
아시아사람들 - ‘두목’ 꺼꾸러뜨린 시각장애인
야 마구치구미 내부의 역학구도 변화를 촉발시킨 사람은 일본 최초의 시각장애 변호사인 다케시타 요시키(54)다. 그가 5대 두목 와타나베의 거물급 변호인단을 꺾고 거액의 배상을 받아냈다. 3차 조직의 말단 조직원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연대책임을 야쿠자 우두머리에게 물은 획기적 판결을 이끌어낸 것이다.
최대 폭력조직의 두목을 상대로 한 소송이라 누구도 맡으려 하지 않았다. 평소 두목의 책임을 강조해온 탓에 그가 앞장서게 됐다. 1심에선 패했으나 항소심에선 재판부 설득에 성공했다. 항소심 판결이 나오자 그는 역사적 첫발을 내딛었다는 기쁨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눈이 나빴던 다케시타는 중3 때 스모 연습 도중 망막박리로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장애인학교를 다니면서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 탐정소설·드라마가 재미있었다는 단순한 이유다. 그렇지만 기초과목 성적조차 바닥권이던 그에게는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교사들은 법대에 진학하겠다는 그를 타박하면서도 보충수업까지 해주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71년 다행히 교토의 류코쿠대에 입학했다. 학교 쪽은 특별한 배려를 해줄 수 없다는 조건을 붙여 그를 받아들였다. 교내 점자번역 동아리 등의 도움을 얻어 점자 교재와 강의 녹음 테이프를 만들어 공부를 해나가는 것은 물론, 시각장애인의 학습환경 개선을 위한 조직도 꾸렸다.
1학 년을 마칠 무렵 사법고시 도전을 계획하고는 법무성에 점자로 수험이 가능한지를 문의했으나, ‘실시 불가능’이라는 매정한 답이 돌아왔다. 1년여 싸움 끝에 점자 수험을 허용받았고, 점자 육법전서 제공 등도 쟁취했다. 9차례의 도전 끝에 81년 합격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동안 생활비를 벌기 위해 평일 저녁 3시간씩 병원에서 마사지를 하고, 토·일요일에는 하루 종일 안마일에 매달려야 했다.
밝은 성격을 타고 났기에 이런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는 힘든 안마에 대해 “불편한 곳을 부드럽게 해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뻐한다. 변호사의 일도 그런 의미에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해마다 마라톤 풀코스 한번, 하프코스 10번 정도를 완주해왔다. 지난 4월에는 40일 동안 휴가를 내 히말라야의 쵸오유봉(8201m) 등정에 나섰다. 정상을 불과 250m 앞두고 발길을 돌려야 했지만.
그가 가장 즐겨 쓰는 말은 도전이다. “도전은 힘을 준다. 하나의 도전을 끝내면 불안과 쓸쓸함이 찾아오므로 자연히 다음 도전을 찾아나서게 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그는 그동안 생활보호대상자 등 사회적 약자 변호에 주력해왔다. 지난 10월에는 그의 삶을 다룬 <전맹>라는 책도 출간됐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http://www.hani.co.kr/kisa/section-004006000/2005/12/0040060002005122518132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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